책상위의 분할 (Partition on the desk)
– 작가 신이피
A는
이 세상은 천상계와 지상계가 있다고 주장했다. 그에 따르면 천상계는 에테르로 가득한 완전무결한 세계라고 한다. 달과 태양이 원운동을 계속하지만 늘 일정한 속도로 멈추지 않고 움직이며 서로 부딪치거나 마찰할 일이 없이 평화롭다고 한다.
반면 지상계는 움직이던 것이 정지하거나 정지하고 있던 것이 일정한 규칙을 발견하기 어렵게 운동하고 그는 이 모든 것을 불안정한 세계라고 한다.
D는 지상계의 ‘불안정함’에 동의했다.
덧붙여, 모든 변화와 운동은 외부에 의해서만 일어난다고 했다. 그리고 그 외부는 어떤 ‘신’적인 존재를 의미하는 것 같았다. 그에게 ‘신’은 물체를 끊임없이 움직이게 할 수 있는 것만 같았다. 그는 정신은 이성적 사유의 활동으로서 공간을 차지하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그러므로 물질과 정신은 서로 철저하게 분리되어 있다고 생각했다.
N은 D에게 ‘진공’에 관해 물었더니 최소한의 물질, 아주 약간의 에테르라도 존재하는 것이 물질이며 그 물질이 있는 곳을 공간이라고 했다. 진공의 개념은 있을 수 없다고 단언했다.
N은 계속 움직이는 것은 계속 움직이려는 성질이 있고 가만히 있는 것은 계속 가만히 있으려는 본성이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작게 움직이는 것들을 모두 다 발견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래서 존재하면서도 움직이지도, 변화하지도 않는 ‘절대공간’이라는 것을 상상했다. 시간과 공간이 존재하기도 전인 어떤 절대적인 시공간이 있지 않을까 상상했다.
E는 관찰자의 위치에 따라 모두 달라질 것이라고 했다.
추상적인 과학과 시적인 철학적 대화들이었다. 듣고 있던 나는 이재욱의 <레드라인>은 A의 지상계, D의 진공, N의 절대공간이 아닐까 생각했다. 그러나 이는 모두 레드라인의 어느쪽에 있느냐에 따라 달라질 일일 것이라고도 생각했다.
한국전쟁 발발 전후 발생한 제주 4·3사건이나 국민 보도연맹사건 등 민간인 대량 학살 사건들은 대한민국 정부 수립 직후인 1948년 11월부터 소위 ‘초토화 작전’으로 전개 되었으며 당시 인구의 십 분의 일에 해당하는 3만여 명의 민간인 희생자가 발생 시켰다고 한다.
1948년 10월 17일 제주, 군은 해안선으로부터 5km 이상 들어간 중산간 지대를 통행하는 자는 폭도배로 간주하여 사살하겠다는 포고령을 내린다. 이후 대대적인 강경토벌 작전으로 중산간 지대의 마을은 불에 타고 주민들은 집단으로 학살당했다. A의 지상계처럼 모든 불안정을 담은 세계 자체였으리라.
2018년 제주, 이재욱은 한밤에 그 지점을 다시 찾아가 레이저를 설치하고 촬영을 위해 가상의 선을 만들었다. 어쩐지 넘나들기 머뭇거렸다고 했었는데 나는 D가 부정한 진공의 개념을 상기했다.
권력은 또 다른 권력에 끌어당겨 지고 분쟁하던 권력자들은 대량학살계획을 세우고 책상 위에서 선을 그어가며 각자의 이익을 위해 논쟁했으리라. 현실의 시민들의 시, 공간을 넘어선 절대공간에서.
이재욱의 레드라인의 첫인상은 어스름한 자연광이 미스테리한 시간으로 느껴지고 붉은 레이저에 비친 자연물들은 행동 범위가 제한된 연극적 설정이었다. 4.3 학살 때의 괴기한 선을 레이저로 재현한 것이라고 들었을 때 당시의 상식으로 받아들여진 괴기함을 이성적으로,현실적으로 가늠해보려고 과학자들의 철학을 상기해 보았다.
현재를 사는 개인으로서 동시대성을 갖는 작업을 한다는 것은 어떤 자세일까.
시간과 공간은 거스를 수 없이 선형적이나 역사의 리서치과정은 위키피디아, 유튜브, 인터넷 뉴스거리들을 분절적으로, 찾아볼 수 있는. (어쩌면) 비선형적인 시간이다.
비극적인 역사적 사실을 대면할 때에 이루 말할 수 없는 우주의 먼지같이 작은 개인으로서의 존재를 인식하기도 하고 참기 힘든 표출의 욕구로 뜨거워지는 때를 지나 보내기도 한다.
현실에서 조금 빗겨 나와 시간을 읽고 절대공간을 관찰하는 것은 예술의 동시대성이 아닐까 생각해보았다. 과학적 사실에서 불가능한 위치에서 서서 감상적으로 눈물 흘리지 않고 죽은 모든 것들을 위로할 수 있을까. 그러면 얼마나 좋을까. 하고 책상에 앉아서 생각해 보았다.
그리고 덧붙이는 말.
이재욱의 <레드라인>은 2017 년 제주 이아 레지던시 입주부터 2018 년까지 작업한 결과물로 2019 년 4 월 ‘상업화랑’에서 열린 개인전에서 발표한 사진 시리즈 작업이다.
‘책상 위의 분할’ 베를린 회의 때에 책상 위에서 게임처럼 나누어졌던 아프리카 식민지 지도 사건에서 비유한 제목이다.
아프리카 분할( Partition of Africa)은 1880년대에서부터 제1차 세계대전이 있었던 1914년까지 유럽의 제국주의적 침략으로 아프리카가 몇몇 열강의 식민지로 분할된 사건을 말한다. 19세기 말 유럽의 열강들은 세계 각지에 대한 식민지 경쟁에 나섰으며 아프리카 역시 이러한 식민지 쟁탈전의 각축장이 되었다. 1884년에서 1885년에 걸쳐 열린 베를린 회의는 영국, 프랑스, 독일의 아프리카 분할과 벨기에의 콩고에 대한 식민 침략을 정당화했다.
A: Aristotle, D: Descartes, N: Newton, E: Einstein
아리스토텔레스, 데카르트, 뉴턴, 아인슈타인 철학, 사회적인 큰 영향을 끼친 과학자들의 이론을 축약, 약간의 왜곡하여 비유하였다.
– 작가 신이피
A는
이 세상은 천상계와 지상계가 있다고 주장했다. 그에 따르면 천상계는 에테르로 가득한 완전무결한 세계라고 한다. 달과 태양이 원운동을 계속하지만 늘 일정한 속도로 멈추지 않고 움직이며 서로 부딪치거나 마찰할 일이 없이 평화롭다고 한다.
반면 지상계는 움직이던 것이 정지하거나 정지하고 있던 것이 일정한 규칙을 발견하기 어렵게 운동하고 그는 이 모든 것을 불안정한 세계라고 한다.
D는 지상계의 ‘불안정함’에 동의했다.
덧붙여, 모든 변화와 운동은 외부에 의해서만 일어난다고 했다. 그리고 그 외부는 어떤 ‘신’적인 존재를 의미하는 것 같았다. 그에게 ‘신’은 물체를 끊임없이 움직이게 할 수 있는 것만 같았다. 그는 정신은 이성적 사유의 활동으로서 공간을 차지하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그러므로 물질과 정신은 서로 철저하게 분리되어 있다고 생각했다.
N은 D에게 ‘진공’에 관해 물었더니 최소한의 물질, 아주 약간의 에테르라도 존재하는 것이 물질이며 그 물질이 있는 곳을 공간이라고 했다. 진공의 개념은 있을 수 없다고 단언했다.
N은 계속 움직이는 것은 계속 움직이려는 성질이 있고 가만히 있는 것은 계속 가만히 있으려는 본성이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작게 움직이는 것들을 모두 다 발견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래서 존재하면서도 움직이지도, 변화하지도 않는 ‘절대공간’이라는 것을 상상했다. 시간과 공간이 존재하기도 전인 어떤 절대적인 시공간이 있지 않을까 상상했다.
E는 관찰자의 위치에 따라 모두 달라질 것이라고 했다.
추상적인 과학과 시적인 철학적 대화들이었다. 듣고 있던 나는 이재욱의 <레드라인>은 A의 지상계, D의 진공, N의 절대공간이 아닐까 생각했다. 그러나 이는 모두 레드라인의 어느쪽에 있느냐에 따라 달라질 일일 것이라고도 생각했다.
한국전쟁 발발 전후 발생한 제주 4·3사건이나 국민 보도연맹사건 등 민간인 대량 학살 사건들은 대한민국 정부 수립 직후인 1948년 11월부터 소위 ‘초토화 작전’으로 전개 되었으며 당시 인구의 십 분의 일에 해당하는 3만여 명의 민간인 희생자가 발생 시켰다고 한다.
1948년 10월 17일 제주, 군은 해안선으로부터 5km 이상 들어간 중산간 지대를 통행하는 자는 폭도배로 간주하여 사살하겠다는 포고령을 내린다. 이후 대대적인 강경토벌 작전으로 중산간 지대의 마을은 불에 타고 주민들은 집단으로 학살당했다. A의 지상계처럼 모든 불안정을 담은 세계 자체였으리라.
2018년 제주, 이재욱은 한밤에 그 지점을 다시 찾아가 레이저를 설치하고 촬영을 위해 가상의 선을 만들었다. 어쩐지 넘나들기 머뭇거렸다고 했었는데 나는 D가 부정한 진공의 개념을 상기했다.
권력은 또 다른 권력에 끌어당겨 지고 분쟁하던 권력자들은 대량학살계획을 세우고 책상 위에서 선을 그어가며 각자의 이익을 위해 논쟁했으리라. 현실의 시민들의 시, 공간을 넘어선 절대공간에서.
이재욱의 레드라인의 첫인상은 어스름한 자연광이 미스테리한 시간으로 느껴지고 붉은 레이저에 비친 자연물들은 행동 범위가 제한된 연극적 설정이었다. 4.3 학살 때의 괴기한 선을 레이저로 재현한 것이라고 들었을 때 당시의 상식으로 받아들여진 괴기함을 이성적으로,현실적으로 가늠해보려고 과학자들의 철학을 상기해 보았다.
현재를 사는 개인으로서 동시대성을 갖는 작업을 한다는 것은 어떤 자세일까.
시간과 공간은 거스를 수 없이 선형적이나 역사의 리서치과정은 위키피디아, 유튜브, 인터넷 뉴스거리들을 분절적으로, 찾아볼 수 있는. (어쩌면) 비선형적인 시간이다.
비극적인 역사적 사실을 대면할 때에 이루 말할 수 없는 우주의 먼지같이 작은 개인으로서의 존재를 인식하기도 하고 참기 힘든 표출의 욕구로 뜨거워지는 때를 지나 보내기도 한다.
현실에서 조금 빗겨 나와 시간을 읽고 절대공간을 관찰하는 것은 예술의 동시대성이 아닐까 생각해보았다. 과학적 사실에서 불가능한 위치에서 서서 감상적으로 눈물 흘리지 않고 죽은 모든 것들을 위로할 수 있을까. 그러면 얼마나 좋을까. 하고 책상에 앉아서 생각해 보았다.
그리고 덧붙이는 말.
이재욱의 <레드라인>은 2017 년 제주 이아 레지던시 입주부터 2018 년까지 작업한 결과물로 2019 년 4 월 ‘상업화랑’에서 열린 개인전에서 발표한 사진 시리즈 작업이다.
‘책상 위의 분할’ 베를린 회의 때에 책상 위에서 게임처럼 나누어졌던 아프리카 식민지 지도 사건에서 비유한 제목이다.
아프리카 분할( Partition of Africa)은 1880년대에서부터 제1차 세계대전이 있었던 1914년까지 유럽의 제국주의적 침략으로 아프리카가 몇몇 열강의 식민지로 분할된 사건을 말한다. 19세기 말 유럽의 열강들은 세계 각지에 대한 식민지 경쟁에 나섰으며 아프리카 역시 이러한 식민지 쟁탈전의 각축장이 되었다. 1884년에서 1885년에 걸쳐 열린 베를린 회의는 영국, 프랑스, 독일의 아프리카 분할과 벨기에의 콩고에 대한 식민 침략을 정당화했다.
A: Aristotle, D: Descartes, N: Newton, E: Einstein
아리스토텔레스, 데카르트, 뉴턴, 아인슈타인 철학, 사회적인 큰 영향을 끼친 과학자들의 이론을 축약, 약간의 왜곡하여 비유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