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곳에서 건져 올린 것>

신승오(페리지갤러리 디렉터)

이재욱은 신도시의 모습을 담은 《NEW TOWN》, 국가의 위기 속 사람들을 다룬 《It’s not your fault》, 제주 4.3사건에서 포고령에 의한 경계선을 가시화한 《Red Line》, 북한에서 스마트폰으로 촬영된 실제 북한의 일상의 사진인 《Inner Safety Ⅱ》, 군사독재 시절 남산에 있었던 권력기관 건물을 찍어낸 《Grade X Exposure》 등 다양한 소재를 사진으로 작업해 왔다. 작가가 관심을 가지는 소재는 대부분 특별한 사건을 통해 먼저 접하고 그것이 발생한 장소에 접근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어떤 이유에서건 일시적으로 머물게 되는 공간에서 마주하게 되는 사건에서 시작된다. 그렇기에 그는 자연스럽게 대상과의 거리를 유지한 채 외부자로서의 관찰자의 태도를 견지하고 있다. 이번에 선보이는 작업의 소재도 그가 머무르고 작업한 경기창작센터 자리에 위치하였던 선감학원에서 벌어진 일이다. 일제 식민지 시대를 거쳐 80년대까지 존재했던 이 장소는 전국의 고아들이나 부랑아들을 모아서 교화한다는 명목으로 세워진 소년 수용소이다. 작가에 의하면 이 시설의 존재가 알려진 것은 생각보다 오래된 일이 아니며, 이제는 육지와 연결되어버렸지만, 그 당시에는 고립된 섬에서 많은 아이들이 모진 학대와 착취를 견디지 못하고 간조 시간을 이용해 갯벌을 건너 탈출을 시도를 하다 희생되었다고 한다. 이러한 이야기들을 통해 작가는 경기창작센터 주변의 갯벌에 관심을 가지고 관찰하게 되었다.

그가 이번에 선보이는 연작의 제목은 《굽은 물》이다. 자연에서 찾아볼 수 있는 굽은 물은 유유자적 흐르지 못하고 굴곡이 많으며 거친 모습을 연상시킨다. 그리고 물이 굽었다는 언어적 표현 자체에서는 인위적인 외부의 영향에 의해 원래에서 벗어난 기이한 모습으로 변하였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그러나 우리가 그의 작품 앞에서 마주하는 것은 물이 아니라 전면이 큰 벽처럼 평면적이고 고요한 갯벌이다. 그리고 이러한 장면들이 반복적인 연작으로 나타난다. 갯벌의 풍경은 자연스럽게 고랑, 굴곡, 구멍 그리고 바다의 흔적들이 어두움이 멀리 보이는 낮은 하늘과 대비를 이루면서 생동감이 있기보다는 건조한 표면으로 고스란히 드러난다. 이는 실제의 생동감 있는 갯벌과는 다르게 차분하게 보이며, 마치 우주의 혹성 같은 풍경과 같이 생경하고 불길한 예감이 드는 공간이다. 갯벌에서 걸어 본 사람들은 알고 있듯이 그 안에서는 자유롭게 움직이지 못하는 행동에 대한 구속력이 존재한다. 그리고 갯벌은 이내 바닷물이 들어와 감춰지고 다시 드러나기를 규칙적으로 반복하는 유동적인 공간이라는 점이 불안감을 유발한다. 하지만 이러한 풍경 읽기를 제외하면 위에서 앞에서 언급한 작업의 시작점 대한 글이나 정보가 없이 그의 사진을 마주하면 무엇을 읽어낼 수 있을까 의문이 생겨난다. 물론 이러한 정보를 통해 작가가 마주한 사건을 조사하는 과정에서 알게 된 희생자들이 위험을 알면서도 왜 탈출을 시도할 수 밖에 없었는지에 대한 복잡한 심리 상태를 갯벌이라는 상징적 공간으로 전유하고 있다는 일반적인 해석을 할 수도 있다. 그렇지만 그가 보여주는 비어진 풍경은 건조하고 평면적이어서 갯벌에서는 어떤 구체적인 비극적 사건에 대한 서사나 작가의 개인적 감정만을 전달하고자 하는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 게다가 작가에 의하면 그가 촬영한 갯벌은 실제 사건이 벌어진 그 현장인지도 명확하지 않다.

그렇다면 그가 이러한 작업에서 의도하는 점은 무엇일까? 작가는 필자와의 인터뷰에서 현대 사회에서는 가해자와 피해자가 존재하며, 이러한 상황은 언제 서로의 위치를 바꾸어서 나타날지 모르는 유동적인 상태라고 말했다. 또한 그는 우리에게 보이지 않게 작용하고 있는 사회가 가진 힘의 논리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있다고도 하였다. 하지만 여기에는 서두에 언급한 것처럼 그가 항상 어떤 사건을 만나는 방식 다시 말해 스쳐 지나가는 외부자 혹은 방관자 시선으로 볼 수밖에 없는 상황이 전제된다. 사실 우리가 어떤 사건의 당사자이거나 이해관계에 있지 않다면 어떤 사건에 대해 무관심하기 마련이다. 또한 그 내용에 대해 무지하기 때문에 어떤 사실에 접근하기 위한 첫 번째 단계는 자료조사를 통한 정보의 획득이다. 그리고 현장을 방문하여 관련된 사람들을 취재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렇게 얻어진 정보만으로는 단편적이고 이미 고정되어 버린 사실만을 확인할 수 있을 뿐이다. 그렇기에 그 당시의 공간에서 그 흔적들은 이미 사라진 지 오래이고, 시간적으로는 매일 새로운 나날을 맞이하는 상황에서 어떻게 현재에 시공간에서 이것들을 어떤 방식과 태도로 다루어야 할지에 대한 작가의 고민이 시작된다.

우리가 어떤 사건을 대하는 일반적인 태도를 생각해보자. 우리의 관심을 끌어 시선이 머무는 곳은 어떻게 보면 사건과 연결된 사람들을 추적하면서 자연스럽게 혹은 의도를 가지고 드러나는 것들이다. 이는 우리가 추적 프로그램이나 다큐멘터리에서 볼 수 있는 피해자나 관련자들의 중요한 증언, 그리고 생생한 재현을 통한 진실에 대한 확인이다. 그러나 우리가 주목해야 되는 것은 그것을 명확하게 판단하게 해주는 스스로에게 계기가 되는 지점을 발견하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무엇이 그것을 가능하게 했으며, 그로 인해 그것은 무엇이 되었는지를 판단하고 구별하는 것이 필요하다. 따라서 작가가 사건을 바라보는 위치는 사건의 깊숙한 곳으로 들어가 자신이 직접 경험하면서 과거의 것들과 혼재되기보다는 한 발 떨어져서 있고, 그는 이러한 거리를 통해 그의 눈에서 발견되어 드러나는 중요한 지점들을 찾아내고자 노력한다. 다시 말해 우리는 살아가면서 접하는 모든 정보를 중요하게 여겨 수용할 수 없다. 그런데 어떤 사건 속에는 분명히 중요한 것과 사소한 것들이 뒤섞여 있다. 작가가 이러한 혼재 속에서 그 사건에서의 가장 중요한 국면을 찾아내는 것이다. 그렇기에 그는 사건의 조사를 통해 얻게 되는 모든 정보를 통해 사건을 재구성하기보다는 어떤 사건의 전체가 가진 본질을 직시하고 그것이 가능하게 된 이유가 무엇인지에 대해 인식하고자 한다. 이를 근거로 본다면 갯벌은 억압된 소년들이 저 멀리 손에 잡힐 듯이 보이는 육지를 바라보면서 만조 시간과 간조 시간마다 느꼈을 자유를 얻을 수 있는 탈출의 희망과 실패의 죽음 사이에서 어쩔 수 없는 선택으로 내몰릴 수밖에 없었던 중요한 장소이다. 그리고 이를 그가 관심을 가지고 있는 언제든지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어디론가 내몰리는 사회구조가 가진 비가시적인 힘과 유사한 환경적 특징을 자연스럽게 교차하게 만들고 있는 것이다.  

그렇지만 이재욱은 작업의 표면에서는 이러한 사건에 대한 직접적인 정보를 우리에게 드러내지 않는다. 물론 작가 자신에게 있어서는 그 사건에 관한 직접적인 정보를 수집하는 과정이 무엇인가의 실체를 확인하기 위해 당연히 거쳐야 할 과정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의 작품을 보는 관객 모두가 그 사실을 하나하나 알아야만 모든 것을 이해하고 느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다시 말해 실제적인 정보나 진실과 다를 수도 있는 하나하나의 개별적인 개인의 사유는 어느 하나가 우위를 점할 수 없다. 그렇기에 작가는 현재의 시점에서 뒤돌아볼 수밖에 없는 과거의 사건에 대한 사실적 자료에 의존하기 보다는 자신의 현재적 관점으로 파편적인 단서들 사이의 빈 곳을 바라보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보면 그의 작업은 이미 사라진 것들의 실질적인 자료가 부족한 파편에서 무엇인가를 발견해 내는 상상력이 필요한 고고학과 유사해 보인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명확한 텍스트나 인터뷰로 이루어진 정보들이 나열되는 사실 혹은 진실이라는 정보 외에 무엇을 작가로서 여기에 더 할 수 있을까라는 작가의 질문이다. 이렇게 어떤 견고한 사고에 잔잔한 균열을 일으키는 것은 시간이 필요하다. 그것은 대상에 대한 지식적인 인식에 기인하기보다는 스스로 사유하는 데에서 발생하는 것이다. 결국 그의 작업에서 중요한 것은 이미 벌어진 것에 감정적으로 동화되어 그것들과 함께 머무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밖에서 거리를 두고 바라보며 분리하여 자신의 방식으로 옮겨오고자 하는 태도이다.

정리해 보자면 이번 작업에서의 개별적인 분리는 그들의 탈출에 대한 희망과 실패로 인한 죽음을 재현하는 선감학원 사건에 대한 사실적 접근이 아니다. 오히려 그가 촬영한 평면적이고 정적인 갯벌의 풍경은 특정한 사건들을 우리와 연결해 명확한 관계를 만들어내려는 의도가 아니라 아무런 이야기도 하지 않음으로써 그 비어진 틈을 통해 우리에게 생각의 자율성을 자극하기 위해서이다. 어떤 사건을 이해하는 것은 이미 지나가버린 사실을 그저 붙잡고 있는 것만으로 충분하지 않다. 오히려 이렇게 멈추어져 고정된 것에서 새로운 단계로 이행하기 위해서는 가까이에서 밀접하게 접근기보다는 거리를 유지하고 느슨하게 연결되는 것이 오히려 많은 의미들을 생산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기에 그의 《굽은 물》 연작은 연속적이면서 반복되는 이미지들로 구성되고 있으며, 어느 특정한 작업 하나가 극적으로 도약하지 않는다. 이렇게 그는 확정적인 것을 포착하지 않고 비움을 통해 그 자리를 관객들이 채워 나가기를 바라고 있다. 이번 연작은 그가 지금까지 다루어온 다른 시리즈보다도 이러한 성향이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지금까지 살펴본 바와 같이 이재욱은 외부자의 위치에서 대상과의 거리를 유지하는 자신만의 방식으로 이런 일을 반복적으로 발생하게 만드는 비가시적인 사회 구조에 대해 우리 스스로 인식하는 계기를 만드는 장면을 《굽은 물》과 같이 비어버린 공간에서 건져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