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온함에 대하여
– 강수정, 국립현대미술관 수석큐레이터

한 사람의 작가는 어떤 방식으로 사회와 삶을 바라볼 수 있을까? 그리고 이를 어떤 방식으로 물리적 형태의 결과물, 즉 작품으로 남겨 놓을까? 이재욱 작가는 이 질문에 대하여 동시대 미술계에 섬세한 층위 하나를 덧입히는 잠재력을 지니고 있다. 최근 선보이는 그의 작품은 사회와 삶을 바라보는 작가의 균형 감각과 새로운 감수성을 제안한다는 점에서, 유사한 주제를 다룬 여타의 작품과 또 다른 방식을 보여준다. 사실 이번 작품에서 표현한 재개발, 사회 부조리와 개별자, 비극의 역사는 한국 현대미술에서 다양한 작가들이 해석해 온 주제다. 그래서 자칫 익숙한 테마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그의 작품은 그 너머, 물리적 형태를 넘어선 일상에 도사리고 있는, 인지하지 못하는 속성을 다룸으로써 그들과 변별력을 구축한다. 즉 이재욱 작가의 작품에서 보이는 일상은 나른한 ‘불온함’을 머금고 있다. 그리고 이들의 모습을 바라보는 우리는 세상을 담아내는 모니터를 통해 여러 지역을 순회하는 듯한 느낌을 받는다. 초기 작품에 나타난 재개발 지구의 단면은 그간 미술계에서 다뤄온 비판적 시각과 차이가 있다. 실제 작가가 성장한 일상 공간으로서 재개발 지역은 평온함, 보편성 그리고 그 층위 아래 생존에 대한 위협감이 배어든 채 포착되어있다. 이는 ‘너의 잘못이 아니야’ 에서 좀 더 넓은 세계로 확장되었다. 작가는 하나의 주제를 중심으로 유럽과 몇몇 아시아 지역을 선택하고, 이를 통해 국가라는 범주화된 선택 공간을 중심으로 사진 찍기를 시도한다. 일정한 문화, 경제 지역과 특정 영토 안에 구성된 사람들이 살아가는 일상의 한 부분을 다루는 것이다. 이들에게 국가는 일상에서 가시적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사실 최고 통치권을 가진 국가는 자국민의 사회적 목표와 욕구를 제도를 통해 효율적으로 실현해야 하지만, 복잡한 국제 관계, 자본과 경제의 이동, 인종, 계층 등 많은 갈등으로 인해 제대로 작동되지 않는다. 그리고 그것은 개개인의 삶에 영향을 미친다. 이때 작가가 들여다본 국가는 크게 네 개 지역이다. 바로 터키, 독일, 그리스, 한국인데 이곳의 공통점은 경제 파탄, 테러, 인종차별, 민주화 등으로 인해 사회적으로 커다란 위기와 갈등 상황을 겪으며 국제 사회의 주목을 끌었다는 것이다. 그중에서 독일과 한국은 작가의 생활 기반이며 일상의 삶과 밀접하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오히려 이 주제에 대한 고민이 추상적인 것이 아니라 내밀한 개인성에 근거한다는 점이 신뢰를 얻는다. 독일의 경우는 난민 문제와 테러에 직면한 유럽의 상황을 잘 보여 주는데, 사실 이러한 부분은 개인의 문제뿐만 아니라 이 안에서 복잡하게 움직이는 부의 불평등, 편견을 기반으로 한 인종 차별 등의 이데올로기 문제 등이 얽혀 있다. 그러므로 이러한 위기는 불안 딜레마를 야기하며, 사회 구성원들의 분열을 불러일으킨다. 개인은 이유를 알 수 없는 불황과 고통에 일상을 잠식당하고 마는 것이다. 이재욱은 이러한 대전제들로 인해 관계가 균열을 일으킬 때 맞이할 수밖에 없는 개인들의 무력함과 정서에 관심을 두고 있다. 한국에 대한 작업 역시 지난 촛불시위의 결과와 별개로 여전히 거리에서 벌어지는 세대 간 혹은 정치적 대립 상황을 다룬다. 여기에서도 작가는 사건의 원인이나 결과, 상황보다는 그로 인해 드러나는 개인의 모습에 집중한다. 이 경우 기존에는 개인을 투사나 피해자로 묘사했다. 그러나 극단적 분열 상황인 시위 장면에서도 이재욱이 포착한 것은 한 귀퉁이에서 태극기를 내린 무기력한 모습들이다. 작가는 이를 통해 개개인이 모여 거대한 집단 정체성으로 표기되는 어느 영토의 주인인 국민이 마주하는 현실은, 사실은 그들이 주인이라는 권리를 인정하는 국가가 만들어 내는 불온한 위기라는 것을 말한다. 또한, 이 때문에 개개인은 매우 무기력한 존재로 전락함을 보여 준다. 그러므로 ‘당신의 잘못, 이 아니다’라고 말하는 것은 어쩌면 진실한 말 걸기이며 본질을 언급하는 표제어일 것이다.
이 시리즈를 담아내는 이재욱의 촬영 방식은 유사 다큐멘터리로서의 연출과 순간을 잡아내는 스냅 샷을 병행하지만, 둘 다 모두 설치 작업 같은 진행으로 긴 시간의 계획 아래 이루어진다. 오랜 시간을 들여 작가가 덫처럼 설치해 둔 장소에 실제 그곳 상황에 엮여 있는 사람들의 모습을 포착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들의 실제 표정을 잡아내기 위하여 무선 릴리즈를 통해 카메라에 담아내는 방식을 이용한다. 그 결과 그들의 표정은 비현실적으로 느껴질 만큼 나른한 무력함을 보이지만, 사실은 매우 현실적인 모습이라는 모순을 실현한다. 다만 풍경 사진과 인물 사진의 병치는 증폭되어야 할 시너지 효과가 이미지와 내러티브에서 강한 긴장감을 도출하고 이를 통해 더 강렬한 시각적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을지 좀 더 지켜봐야 할 과제이기도 하다. 신작인 ‘레드라인’에서 작가는 이 불온성에 대해 좀 더 선명하고 날카롭게 시각화하는 방식을 찾아냄으로써 스스로 그 해답을 찾아가고 있다. 제주 레지던시 프로그램에 참여하며 제주 4·3사건을 접한 이재욱은 불온 성을 한국 역사의 구체적인 대상과 장소로 확장했다. 이는 기존의 현상 중심의 해석과 표현이 더 깊이있는 주제로확장되었을 뿐만 아니라 표현 방식에서도 주관적인 시선이 더 개입된 것으로 읽힌다. 이 시리즈는 그 동안 모호하게 표현해 온 볼온성을 물리적 형태로 직접 가시화 했다는 점이 가장 큰 특징이다. 생사의 극단적 기준인‚ 해안선에서 5킬로미터를 붉은 레이저를 설치하여 한밤에 장노출로 촬영했다. 작가는 촬영을 위해 스스로 만든 이 선조차도 넘어서기 힘들었음을 고백하며, 검열과 억압의 선은 사회와 개인 안에 아직도 존재함을 증언한다. 그는 보이지 않는 불온함을 보이게 함으로써 일상에 스며 든 국가의 극단적 폭력을 확인 가능한 그 무엇으로 만들어낸 것이다. 기존작품에서 고민하던 일상의 평온함에 도사린 불온함을 구호의 도움을 빌리지 않고도 오직 화면에 등장하는 이미지 간의 긴장감을 통하여 좀 더 시각적인 공감대를 형성해야하는 과제에 한발 더 다가선 모습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작가는 균형과 감수성이 내재된 작품 창작이 이방인처럼 맴도는 자신의 내성적 성향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원래 예술가는 어느 시대 어느 사회에서도 이방인으로 존재하며 작품으로 그 시대를 영원히 증언한다. 이재욱은 이를 그저 진솔하게 실천하고 있다.